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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부캐는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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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멀티 페르소나의 시대

연예계는 ‘부캐’ 전성시대다.

 

온라인 게임에서 주로 하던 캐릭터가 아닌 부 캐릭터를 추가로 만든다는 의미였던 부캐는 어느새 연예인의 멀티 페르소나(다중적 자아)를 지칭하는 단어가 됐다.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는 국민 예능 ‘무한도전’ 종영 이후 국민 MC 유재석의 새로운 도전기를 그렸다.

 

명실상부 국민 예능인인 유재석이 마치 ‘백수’라도 된 것처럼 그린 것이나 그가 부캐인 ‘유산슬’로서 트로트계에 입문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다소 불편했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유재석으로 시작된 ‘부캐놀이’가 연예계 부캐 전성시대의 신호탄이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부캐라는 단어가 TV에 나오면 무슨 의미인지 몰라 갸웃했던 시니어를 위해 부캐 문화에 대해 알아봤다.

 

박준영 기자

 

 

같은 유저가 플레이하지만 역할이 다른 부캐
온라인 게임에서 처음 만든 캐릭터를 자신의 본(本) 캐릭터라는 뜻으로 본캐라고 부른다. 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캐릭터라는 의미로 ‘주캐’라고도 한다.


본캐를 성장시키며 게임을 하다 보면 웬만한 콘텐츠는 다 즐겼고, 반복되는 플레이 스타일에 지겨워진다.

 

이때 게임 속에서 다른 역할을 하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 게 되고, 이렇게 새로 만드는 캐릭터를 ‘부캐’라고 한다.


본캐와 부캐는 같은 캐릭터를 중복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게임 속에서의 직업, 즉 역할이 다르다는 점이 핵심이다.

 


유산슬은 유재석이지만, 유재석이 아니다
유재석이 신인 가수 유산슬로 활동해 화제였다. 유산슬은 우리가 아는 국민 MC 유재석이 아니라 유재석의 부캐다.


유재석의 부캐는 유산슬에서 그치지 않는다. ‘놀면 뭐하니?(MBC 예능)’에서 이효리, 정지훈(비)과 함께 결성한 ‘싹쓰리’에서 그는 유산슬에 이어 두 번째 부캐인 ‘유두래곤’으로도 활동한다. 부캐 열풍의 주역인 유재석은 이외에도 다양한 부캐를 가지고 있다.

 

MBC는 소통 매거진 ‘시소’를 통해 ‘유재석 부캐 모음’이라는 제목의 일러스트를 발표하기도 했다.

 


모든 사람은 이미 부캐를 가지고 있다
트렌드 용어를 다루는 서적에 따르면 “이제 ‘나 자신’을 뜻하는 영단어 ‘myself’는 복수형인 ‘myselves’로 바꿔야 할 때”다. 전문가들은 “모든 사람이 이미 부캐를 가지고 있는, 멀티 페르소나의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김난도 교수(서울대)가 주도하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2020년 소비 트렌드 10개 중 하나로 ‘멀티 페르소나’를 제시했다. ‘다중적 자아’라는 뜻으로 상황에 따라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여 다양한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페르소나(Persona)는 라틴어로 배우가 쓴 가면을 뜻한다. 심리학적으로는 타인에게 인식되는 자아, 또는 자아가 사회적 지위나 가치관에 의해 타인에게 비치는 성격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그 사람의 ‘캐릭터’다.

 


멀티 페르소나는 단어 그대로 한 사람이 서로 다른 자아·정체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회사나 학교 등에서 자기의 본래 직업에 임할 때, 퇴근 후 집에 있을 때, SNS 등 온라인으로 소통할 때, 취미 생활을 즐길 때 등 상황에 따라 다른 정체성이 발현된다.


실제로 ‘당신은 언제 어디서든 한결같은 사람인가’하는 질문에 속 시원히 ‘그렇다’고 답변할 사람은 많지 않다. 젊은 세대일수록 그렇다.

 

‘김 부장’은 부캐, 퇴근 이후부터가 본캐
최근 ‘워라밸’의 가치관이 대세다.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즉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일이 목적이었다면, 요즘에는 그저 수단이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차이가 극명한 지점이기도 하다.


일이 목적인 시대에는 사회인으로서의 내가 본캐다.

 

그리고 집안의 가장인 나 역시 본캐의 일그러나 일이 수단이 된 지금은 사회인으로서의 나도 여러 캐릭터 중 하나일 뿐이다.

 

본캐와 부캐는 사실상 수직적이거나 종속적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관계에 가깝다. 직장인으로서의 나는 내가 연기하는 하나의 분야일 뿐이다.


 

숨겨왔던 나의 모습들,

부캐로 당당히 드러낸다
시니어들에게는 부캐 만들기를 추천한다. 부캐 만들기는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사례1) 김무석 씨의 부캐, 김따뜻
무뚝뚝한 아버지로만 평생 살아와서 어느샌가 가족들에게 진심을 전하기 어려웠던 김무석(가명, 64세) 씨는 고민만 거듭하다가 부캐인 ‘김따뜻’을 만들었다.

 

김따뜻 씨에 따르면 김따뜻 씨는 늘 무뚝뚝해 차갑다는 평을 받아온 김무석 씨와는 달리 ‘1일 1 칭찬’이 습관이고, 특별한 용무 없이 목소리 듣기 위한 전화 걸기가 취미다.

 

사례2) 안정현 씨의 부캐, 안이요(아니요)
대인관계에서 거절 못하기로 유명한 안정현 씨(가명, 45세)는 부캐로 ‘안이요’를 만들었다. SNS 프로필에 본명 대신 ‘안이요’라는 이름을 적었다.

 

안이요 씨에 따르면 개명을 한 것도 아니고 사실은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지만 스스로 거절이 쉬워졌다.


부캐 만들기는 특별한 게 아니다. 감추고만 있었던 다양한 나의 모습들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일이다.

 


나는 본캐로 살아가고 있는가
연예인은 부캐를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본캐보다 더 큰 인기를 얻기도 한다. 연예인이 아닌 우리는 어떨까.

 

우리네 인생사도 역할극의 연속이다. 일터에서, 가족 안에서, 지인들 사이에서, 우리는 맡은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그 역할이 곧 나 자신, 즉 ‘나의 본캐’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막상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인생을 살아왔다”는 회고를 들어본 기억은 거의 없다. 어쩌면 우리는 역할극에만 몰두해 자신의 부캐를 본캐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부캐를 고민하기 전에 나는 지금 나의 본캐로 살고 있는지도 돌이켜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