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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먹의 깊이와 두께로 그리는 풍경 수묵화가 백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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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채우지 않고 비우는 수묵의 매력
그릴 때마다 몸도 마음도 행복합니다”

[ 시니어가이드 안기훈 기자 ]

 

 

 

최상의 상태에서 그리는 행복한 그림

“같은 구도로 같은 그림을 그리는 거 싫어해요. 시간이 지나면 제 마음도 변하고, 사물도 변하고 우리가 발을 디딘 공간인 땅과 하늘이 모두 변하는데, 똑같이 그릴 수는 없지요. 순간순간 생각나면 그때마다 놓치지 않고 스케치합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려놓은 스케치가 떠오르고 완성하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뭔가 차오르면 곧 그리는 즐거움에 빠집니다. 행복한 순간들이지요.”

 

그는 요즘처럼 그림을 그리는 게 이렇게 행복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아침에 음악을 듣고 차를 마시다가 그림을 그리면 이런 행복을 누리는 것이 천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는 매일 새벽 신과 만난다. 어쩌면 자신 안에 있는 신성을 깨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신 앞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 그림을 찾는다. 그림을 막 그렸을 때는 잘 그린 것 같다가도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면 그 그림이 별로인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림이 변한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변했기 때문이다. 최상의 상태에서 그리기 위해, 최고의 상태에서 그림을 보기 위해 자신을 지우고 비운다. 가끔 자신이 아끼는 그림은 바로 보지 않고 아껴 두었다가 최고의 기분일 때 보기도 한다.

 

그래서 매일 아침 작업실에 와서 어제 그린 그림을 볼 때마다 행복하다. 작업을 마친 밤에 볼 때와 아침에 볼 때 다르다. 그 그림을 보면서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생각한다.

“예전에는 기대치가 높고 내 자신이 그린 그림이 못 마땅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마음에 안 들더라도 그 나름대로 예쁘게 보입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그 상태로 좋다는 것을 느끼지요.”

 

 

 

그림과 사람, 생활이 하나

그의 그림에 대한 태도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놀란다. 그림 앞에 선 자신에 대한 기준이 엄격하다. 작품에만 몰두한다. 나머지 문제는 그에게 사소한, 가볍고 즐거운 일상이다. 작품 하나하나에 변화를 시도한다. 같은 소재를 다루더라도 새롭게 그린다. 구름을 그리면 구름이 몰려오는 듯하게,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그리면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끼도록 그린다. 산수화, 채색화, 수채화, 수묵화를 자유자재로 그리면서 한 곳에 멈춰 서지 않는, 날마다 새롭게 변화하는 그의 정신을 붓으로 보여준다. 일반인이 느끼지 못하는 여러 가지를 성찰하고,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본다. 인간적인 예의나 태도에도 흐트러짐이 없다.

 

“먹이 좋아 수묵화를 합니다. 하얀 화선지 위에 물과 함께 번져 나가는 먹 빛깔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지요. 까만색 그림을 그리기 위해 까만색을 칠하고 하얀색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하얀 물감을 칠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제는 하얀 그림을 그리기 위해 까만 먹을 칠합니다. 여백의 미를 작품화 하는 것이지요. 까만 자신의 몸을 태워 하얀 불꽃을 피워내는 연탄처럼. 살리기 위해, 살기 위해 오늘도 나를 죽이는 희열을 맛봅니다.”

 

그림을 볼 때 경력, 학력, 이름을 가린 채 그림을 보면 그림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그의 수묵은 강약 조절이 잘 되어 있고, 단조롭지 않다. 화음이 잘 맞는 노래처럼 농도 조절, 원근감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다. 붓 터치가 획일적이지 않고 각각 길었다 짧았다가 변화를 거듭한다. 먹선이 강할 때는 강하고, 은은해야 할 곳에 가서는 은은하다. 원근 처리와 구도도 좋다.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트인 곳은 확 트여 있고, 닫힌 곳은 제대로 닫혀 있다. 점 하나에 진하고 중간, 연함이 있고, 원근이 들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얀 그림을 그려볼까 하고 순결하고 품격 있는 순백의 목련을 그렸습니다. 밝고 깨끗해서 좋았지요. 그렇게 하얀 그림을 그리고 있던 어느 날 수묵화를 배우겠다고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오랜만에 수묵화를 그렸습니다. 주변에 있는 화우들과 지인들이 당신은 수묵화를 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또 다시 혼란, 혼동이었지만 새로 수묵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러시아에서 잠깐 미술 공부할 때 까만 먹의 수묵화는 스케치한 밑그림에 불과하다고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까만 수묵화는 칙칙하고 어두워서 싫다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혼란과 갈등으로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한때 ‘잘 팔리는’ 산수화 화가

그는 한때 진경산수화를 그렸다. 1993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흙으로 그린 그림 ‘토시(土時. 흙의 시간)’가 입선하기 전에도 인사동의 화상(畵商)들이 인정하는 ‘인기 화가’였다.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의 그림을 구매자와 연결하는 일을 하는 화상 중 한 사람은 “해송(海松, 그의 호)이 그린 그림은 한 번 보면 훅 빨려 들어가는 매력을 지녔다. 그의 그림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섰을 정도였다. 공동 전시회를 열면 그의 그림 앞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였고, 그림도 순식간에 팔려나갔다”고 당시를 기억한다.

 

당시 한 건설회사 대표는 그에게 300호짜리 두 점을 부탁했다. 당대 대가로 평가받았던 화가의 작품과도 바꿀 수 없는 작품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닐 정도로 그의 그림에 깊이 매료됐다. ‘먹빛도 살아 있고 구도와 점, 선 하나하나가 흐트러짐이 없다. 클래식 음악이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드는 것처럼 보면 볼수록 그의 그림 속에 빠져든다. 볼 때마다 새롭게 다가온다. 같은 산도 어떻게 그렇게 구도가 다르고 느낌이 다른지 마술 같다’고 표현했다.

 

 

당대 인기 화가인 이모부가 스승

초등학교 5학년 성연은 여름방학 무렵 고향 당진에서 서울의 이모네 놀러 갔을 때 멋들어진 그림을 그리는 이모부를 만났다. 진경산수화로 이름을 날렸던 화가 벽해 김송배였다. 벽해는 인사동에서 그의 그림이 안 걸린 화랑이 없을 정도로 잘 팔리는 인기 산수화 화가였다. 동양화가 그려진 달력의 그림은 거의 벽해의 작품이었다.

 

그 이모부의 ‘그림을 그려보라’는 권유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벽해는 처가이자 어린 성연의 본가가 있는 당진을 방문해서도 아침 일찍부터 스케치를 하고 그림을 그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인사동에 있던 벽해화실의 문하생이 되었다. 이모부이자 스승인 벽해의 화실에는 돈 보따리를 싸들고 와서 그림을 사가는 화상들이 줄을 이었다. 화상들은 벽해 선생의 조카이자 화실의 업무를 맡고 있는 성연에게 친절했다. 틈틈이 그린 그의 그림을 화상들이 ‘선물용 소품’으로 사주어서 용돈도 아쉽지 않게 벌었다. 그 시절 그 소소한 사건들은 할 줄 아는 게 그림 밖에 없었던 그에게 전업 화가의 뜻을 품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 시작된 방황

자신의 그림이 팔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청년 성연은 벽해화실에서 먹고 자면서 그림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다. 유명 미술대학의 학생과 졸업생들이 문하생으로 들어와 벽해 선생의 사사를 받았다. 저녁 이후의 화실은 그의 독무대였다. 그는 스승인 벽해의 부지런함을 보고 배우며 그보다 더 부지런했다. 새벽의 산책, 화실의 업무, 문하생들과의 교류, 자신만의 작업을 지속했다. 매주 새로운 전시회를 여는 인사동 거리는 그에게 살아 있는 강의실이었다. 하루 종일 화랑을 돌며 팸플릿을 거두어 와서는 그 안에 실린 작품들과 대화하고 토론했다.

그러던 중 사랑과 이별, 부친의 사망을 한꺼번에 겪게 되면서 덜컥 ‘인생이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은 그림, 아무리 그려도 성에 차지 않는 그림 탓에 스스로에게 절망했고, 그로 인해 그는 망가지기 시작했다.

 

술, 무작정 가출과 잠적 등 불성실한 태도는 스승과의 마찰로 이어졌다. 개인 작업실을 얻어 독립했지만 방황은 끝날 줄 몰랐다. 도를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전국을 정처 없이 떠돌았다. 도를 닦는 고승도 만나 인생이 뭔지도 물었다. 대답은 그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경기도 한 지역의 화가와도 1년 정도 지내며 예술과 인생의 답을 찾았다.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다. 그 상태에서 그림 잘 그렸다고 남들이 아무리 칭찬을 해도 기쁘지 않았다.

 

 

마음의 평안과 국전 입선

그런 날들이 계속 되던 어느 날, 친구로부터 예술가들이 모인다는 장흥 얘기를 들었다. 토탈미술관 등 예술 관련 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한 당시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인근에 거처를 마련하고는 조각가, 화가 등과 술로 밤을 지새우며 예술과 인생에 대해 격론을 벌이기 일쑤였다. 술에 만취해 공동묘지에서 잠을 자는 객기도 부렸다. 그때는 스스로 연탄 한 장 값도 마련하지 못하는 처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밤새 술을 먹고 공동묘지에서 자다가 새벽녘에 마을로 내려와 집으로 가는데, 교회의 새벽 종소리가 그의 귀를 때렸다. 무작정 종소리가 나는 교회를 찾아 예배당으로 들어간 그는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그날 그 자리에서 모든 방황이 끝을 맺었다. 

 

멀리 두었던 붓을 다시 잡았다. 그 이듬해 흙으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을 묘사하기 위해 헐어져가는 흙담(흑벽)을 주제로 그린 그림을 출품했다. 흙의 시간, 흙담, 세월의 흔적을 표현한 ‘토시(土時)’로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입선했다. 유명 미술 대학 출신의 내로라하는 화가들도 어렵다는 국전 입선이었다. 그때 나이 29세였다.

 

“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방황 끝에서 마음의 안식을 얻었고, 그때부터 누구의 그림도 아닌 저만의 그림을 그리게 되었지요. 그림을 그리면 화상들이 후하게 값을 쳐주고 모두 가져갔어요. 당시를 생각하면 참 힘든 시기였지만 지금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주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하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요즘은 가끔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고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미술치료를 합니다. 그런 봉사의 시간도 더 많이 늘려나갈 겁니다.”

그는 7월초 폐광된 삼척탄좌 시설을 창조적인 문화예술단지 '삼탄아트마인'에서 이승연 화가와 2인 초대전을 갖는다. 주민들과 화가, 전문가들을 규합해 수도권 일대에서 아름다운 철길과 역사 건물을 가진 교외선 '일영역'을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드는 일에도 매진하고 있다.

 

 

 

화가 백성연 

 

국내외 개인전 초대전 10회

대한민국 미술대전(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청년 미술 오늘전(갤러리 도올)

미술의 해 기념 초대전(백상기념관)

한국 미술 모색전(세종문화회관 미술관)

구상전(공평 아트센터)

열린 공감전(예술의 전당)

일상과 상징전(서울미술관)

현대 자연회화전(라메르 갤러리)

생묵회 회원전(라메르 갤러리·강화문화원)

여름을 걷다(감동 갤러리 양주시청)

의·양·동 예술로 통하다(의정부 예술의 전당)

현 한국미협 생묵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