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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김 아이덴티티 잇는  세컨드 브랜드 만든다

앙드레김, 아들 김중도의 디자인 인생

[ 시니어가이드 김미란 기자 ] 앙드레김. 그가 떠난 지 12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 한국의 대표 디자이너다. 현재는 그의 아들 김중도가 ‘앙드레김 아뜨리에’를 이어받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앙드레김 특유의 한국적인 미를 잃지 않고 좀 더 심플한 디자인의 세컨드 브랜드를 준비하고 있다. 디자이너로서의 그의 행보가 자못 기대된다.

사진 조도현 기자 
 

 

본명 김봉남(金鳳男). 1935년생. 2010년 8월 사망. 지금 살아있다면 87세다. 대장암으로 6년간 투병하다 타계했다. 사후 최고 등급의 문화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앙드레김. 그가 떠난 지 벌써 12년이 되었다.


1966년에 한국인 최초로 파리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1964년에 영화배우 신성일과 엄앵란이 결혼할 때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이집트는 물론 동남아 등 외국에 한국의 패션을 널리 알렸고, 외교관들과도 폭넓은 교류를 해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앙드레김은 떠났지만 아들 김중도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앙드레김의 브랜드를 이끌어가고 있다. 아들 김중도는 어떤 모습으로 앙드레김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앙드레김 아뜨리에를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가 추구하시던 디자인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앙드레김 아뜨리에는 맞춤복만 하는 곳이라 고객 각자가 원하는, 고객에게 어울리는 옷을 만들고 있다.

 

앙드레김 브랜드는 굉장히 화려하고 연예인, 외교관, 부유층이 입는 옷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대로 유지하는 건가.
일반인은 입을 수 없는 옷이라는 선입견이 강한데 오해의 소지가 있다. 아버지는 원래 심플한 디자인의 정장을 주로 만들었다. 단골은 정장을 맞추러 오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패션쇼에서 모델과 연예인이 입은 옷을 보고 화려하고 비싸다, 드레스와 파티복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2년이 되었다. 디자인 전공은 아니라 어려움이 많았겠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생각은 안 했다. 갑작스럽게 하게 된 일이라 마음에 부담이 컸다. 더구나 내가 보기에 아버지는 디자이너로서 완벽했다. 대단한 분이다. 아버지를 뛰어넘는 디자이너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존재감이 너무 크다. 나만의 색을 가진 디자이너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먹기까지는 갈등도 컸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2~3년 전부터는 나만의 방식으로 소소하게 하기로 정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다행히 아버지가 하시는 걸 어깨너머로 보고 살아서 그런지 완전히 낯선 일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자료조사 차 외국에 나갈 때 데리고 나간 적이 많다. 그게 외국 여행인 셈인데 관광은 하지 않고 명품 매장과 백화점을 다니셨다.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안목을 키우게 된 것 같다. 


아버지는 어떤 디자이너였나
아버지는 천상 디자이너였다. 디자인이 인생이자, 휴식이자, 행복이자, 기쁨이었던 분이다. 늘 디자인을 하고 있었고 디자인을 하지 않는 삶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투병 중에도 디자인이 떠오르면 바로 스케치하고 쉬지를 않았다. 돌아가시기 1년 전쯤부터는 자주 병원에 모셔다드렸는데 그때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 경영 수업이 되었다. 

 


 

아버지가 강조하신 좌우명이 있다면
디자인을 하는 게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고 하셨다.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도 아니고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이라고 하셨다. 세계 최초로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패션쇼를 하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국에 외국 대사들이 부임하면 초대해서 패션쇼도 보여주고 옷도 만들어줬다.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이 컸다.


아버지 앙드레김에 대해 
본인에게 무척 엄격한 분이었다. 아버지로서는 자상한 분이셨다. 저한테는 엄마이자 아빠였는데 엄마 역할까지 최선을 다해 부족하지 않게 해주셨다. 때론 아버지의 자상함이 피곤하기도 했다. 내가 피곤하게 생각했던 아버지의 예민함과 섬세함이 나한테도 있더라. 나도 모르게 닮아가고 있었나 보다. 내가 디자이너가 되어보니 섬세함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직업이더라. 


앙드레김 브랜드를 단 란제리, 골프웨어, 주얼리, 타월 등 다양한 제품이 있다
직접 운영하는 것은 앙드레김 아뜨리에고 다른 제품들은 라이선스를 빌려주고 관리만 하고 있다. 브랜드 이미지를 변질시키면 안 되기 때문에 관리만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주요 고객층은 어떻게 되나
아무래도 아버지 때부터 오셨던 분들이 많다. 가족들이 같이 와서 맞추는 경우가 많다. 남성 정장도 하기 때문에 부부가 와서 정장을 맞춘다. 외국 손님도 많았다. 중국과 중동에서 많이 왔는데 코로나19로 거의 오지를 못하고 있다.

 

앙드레김 아뜨리에의 장점은
아버지가 디자인한 스케치가 셀 수 없이 많다. 고객들의 치수와 컬러, 취향 등이 꼼꼼히 적힌 데이터도 엄청나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에게 최고로 잘 맞는 맞춤복을 하는 것이 장점이 다. 샵에 제작실이 같이 있다. 요즘 디자이너들은 제작실이 같이 있는 경우는 많지 않고 대부분 하청을 준다. 제작실이 있으니 고객이 원할 때 빠르게 수정도 할 수 있고 제작 시간도 조절할 수 있다. 

 


맞춤복 비용은 
자수 문양이 들어가지 않는 단순한 디자인의 정장은 100만 원 선이다. 자수가 많이 들어가고 추가 사항이 많아지면 150만 원에서 300만 원 선이다. 일일이 손으로 수를 놓기 때문에 수만 놓는 시간이 일주일 정도 걸린다. 


연예인 협찬도 많이 하고 있나
‘결혼작사 이혼작곡’ 이란 드라마에 출연한 김보연, 홍진경, 영화배우 윤지민, 투애니원의 씨엘이 뮤직비디오 촬영 때 대여했다. 연예인 협찬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앙드레김 아뜨리에는 용, 잉어, 당초, 꽃 등을 수놓아 한국적인 미를 표현하는데 주력한다. 해외 활동을 많이 하는 아이돌이 우리 옷을 입고 한국적인 미를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 

 

 


시니어가이드 독자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패션은
시니어는 노출이 심한 옷, 튀어 보이는 옷은 입지 않았으면 한다. 옷으로 튀어 보이기보다 자연스럽게 품위를 지키면 더 멋스럽다. 개인적으로 치마 정장보다는 바지 정장을 피트 하게 입는 것이 더 세련되고 멋있어 보인다. 아버지도 고객들이 품위 있게 있도록 권하셨다. 

 

앞으로의 계획은 
앙드레김 아뜨리에는 지금처럼 맞춤복으로 운영하고 세컨드 브랜드로 기성복을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다. 지금은 맞춤복만 하고 있으니 소수만을 위한 옷이 된다. 세컨드 브랜드는 소재는 고급스럽고 디자인은 심플하게 할 예정이다. 앙드레김 아뜨리에의 아이덴티티를 이어가면서 대중적인 옷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