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7 (월)

  • 흐림동두천 25.9℃
  • 흐림강릉 27.9℃
  • 서울 26.6℃
  • 대전 28.8℃
  • 대구 27.3℃
  • 울산 25.0℃
  • 흐림광주 27.9℃
  • 부산 23.2℃
  • 흐림고창 28.7℃
  • 구름많음제주 32.3℃
  • 흐림강화 25.4℃
  • 흐림보은 27.2℃
  • 흐림금산 28.7℃
  • 흐림강진군 28.3℃
  • 흐림경주시 25.3℃
  • 흐림거제 24.7℃
기상청 제공
메뉴

(메이킹필름)우주를 만들고, 역사를 두드리다 ‘직지 화가’ 신용일

붓과 팔레트를 쓰지 않는 회화 작가
기껏 채운 캔버스를 먹물로 덮어
"가슴속의 것을 꺼내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면 좋은 그림"

신용일은 《직지심체요절》을 오브제로 삼고 흙과 물로써 회화를 빚어내는 중견 작가로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알려져 있다.

그는 회화 작가지만 붓이 아니라 진흙을 짜내 ‘직지심체요절’의 글자들을 캔버스로 옮긴다. 그리고 기껏 옮겨놓은 화폭을 뒤엎는다. 그의 작업 방식은 우주의 창조와 역사의 흐름을 닮았다.

 

박준영 기자

 

붓과 팔레트를 쓰지 않는 회화 작가

신용일의 작업 방식은 독특하다.

 

판자에 캔버스 천을 덮고, 거즈를 붙이고 젯소 미디엄으로 칠한다. 미디엄이 마르면 자를 대고 세로줄을 긋는다. '면'이 준비 됐다.

 

다음은 흙과 물이 뒤섞어 진흙 반죽을 만든다. 비닐에 넣고 끝을 뚫어 짤주머니처럼 만들면 신용일만의 붓이 완성된다. 드디어 직지심체요절이 그의 손끝을 타고 캔버스로 내려앉는다. 진흙 글씨들이 한 자 한 자 캔버스를 채운다.

 

그렇게 캔버스를 꽉 채우면 완성일까?

아니다.

 

 

 

 

신용일의 예술, ‘없앰’으로 ‘있음’을 보이다

글자로 캔버스를 채우는 건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는 하다. 신용일의 ‘작업’에 있어서는 중반 혹은 종반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업은 끝나갈지라도 신용일의 ‘예술’은 이때부터 시작이다.기껏 채워 넣은 캔버스에 황토물을 덧발라버린다.

 

그 위로 아예 흰색 때로는 먹물과 자연 물감을 빠짐없이 칠한다. 짜놓은 글씨를 피하거나 보호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덮어버린다. 신용일의 손놀림에는 거침이 없다. 곧 캔버스는 시커먼 색으로 뒤덮인, 의미를 알 수 없는 물건이 된다.

 

 

 

 

 

 

 

그러면 신용일은 거즈를 들어 캔버스를 덮어 물감을 흡수시킨다. 휴지를 뭉쳐 캔버스를 두드려댄다. 어떤 방식이나 법칙이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저 두드린다. 문지르기도 하고, 찍어내기도 한다.

 

 

그의 손이 가는 곳마다 처음에 새겨놓은 글자가 다시 드러나기도, 오히려 더 묻히기도 한다. 글자는 형태가 보이더라도 처음의 색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그러나 그 형태는 남았다.

 

이런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묘한 아우라를 풍기는 캔버스. 신용일은 가차 없이 캔버스를 다시 흙으로 덮어버린다. 그리고 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신용일 작가의 작품 메이킹 필름 보기>

<신용일 작가의 작품 메이킹 필름 보기>

 

 

 

 

글자를 품은 흙, 흙을 품은 영혼

‘의식이 생성되기 이전의 처음 상태로 회귀하는 작업이며, 동시에 새겨진 어떤 기록이며, 그 기록에는 역사와 시간이 담겨 있다. 힘들인 공력에 비해 공허한 결과지만 SUNYATA(空)는 이렇게 기억과 흔적을 남기며 탄생한다.’

 

신용일의 전시 리플릿 문구다.

 

요컨대 그의 작업 자체가 마치 이 세계를 상징하고 있다. 그는 기껏 써놓은 글자들을 덮어 지우는 작업에 대해 ‘비움으로 다시 채울 수 있게 된다’는 선문답 식의 표현을 했다.

 

문득 그런 의문이 든다. 글자를 흙으로 덮어 지운 것이 비움일까? 새로운 행위로 ‘채운’ 것으로 볼 수는 없을까?

 

“소멸과 불멸은 대립이 아니라 조화입니다. 글자를 흙으로 덮고 지우는 것은 단순한 행위의 반복이 아닌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기 위한 치열한 침잠의 응고된 결과물로 여깁니다.”

신용일의 설명이다.

 

글자 하나하나가 생이라면 수없이 많은 생이 흙으로 덮이는 건 인간 생애 자체를 상징하는 건 아닐까.

 

직지심체요절은 구텐베르크보다 80년 앞선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다.

종종 이를 직지심경으로 부르는데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경전에만 ‘경’을 붙일 수 있어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1972년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유네스코 주최로 개최한 ‘책의 역사’ 전시회에서 발견돼 현재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자연을 옮겨 심는 직지 화가

“저는 인위적인 것보다는 자연적인 느낌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제 작업은 자연이 나를 통해 작업물이 된다는 개념이에요. 작품을 만들 땐 작업에 심취하되 음악을 듣거나 자연의 소리를 함께 듣는 이유죠. ‘生’자를 쓸 때는 ‘생’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자연계에 존재하는 것들을 다시 한번 지켜봅니다.”

 

직지심체요절은 사람됨을 토론하는 선문답을 옮겨놓은 책이다.

이를 흙으로 적고, 흙으로 덮어서 물감을 채우고 두드린다는 건 과거와의 소통이며, 역사의 흔적을 찾는 일이다. 흙은 가장 자연에 가까운 소재이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삶은 꽉 채워진 삶이고, 자유의 삶은 텅 비워진 삶입니다.”

 

그의 작품을 멀리서 보면 텅 빈 것 같지만 가까이 보면 글자들로 꽉 차 있다. ‘채움’으로 ‘비움’을 표현한 것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우주의 공간과 같다.

 

“있어도 없는 것 같고, 없어도 있는 것 같은 것. 불교에서 말하는 ‘SUNYATA’ 즉, ‘空’입니다.”

 

 

 

신용일의 작업은 역사를 닮았다

직지심체요절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이다. 1377년 고려 우왕 3년에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됐다. 신용일이 직지심체요절을 오브제로 활용하는 이유는 바로 상징성 때문이다.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그 인쇄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을 한자로 옮겨 심는 건 잊혔던 ‘마음의 유산’을 환기하고, 동시에 인간 본성의 ‘마음 밭’에 새로운 ‘자각의 씨앗’을 심고자 함입니다. 그것들은 역사의 되뇜으로 망각했던 ‘자성의 빛과 영광’을 ‘감성의 땅(회화적 공간)’에 되비쳐 내는 작업입니다.”

 

궁금했다. 그럼 기껏 심어놓고, 되비쳐 낸 자각의 씨앗과 감성의 땅을 왜 다시 지워버릴까.

 

“그러나 그것의 문자적 고착을 다시 부정하고 초월하기 위해 그 위에 흙을 뿌리고, 먹물이나 물감을 엎지르고, 골고루 문지르고 어루만지듯 적시고 눌러주어 따뜻한 여명과 황혼의 질감을 동시에 창출합니다.”

 

결국, 그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우주를 창조하고, 그 위에 흐르는 역사를 지켜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신용일이 다루는 흙과 물은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2가지 요소다. 우리가 사는 지구도 그렇다. 신용일이 만든 진흙은 곧 이 우주다.

 

그렇게 만들어낸 우주를 두드린다. 덧바르고 찍어낸다. 캔버스라는 공간을 창조하고 두드리면 그 안에서 흙과 물과 물감들은 부대낀다.

 

마치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세상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처럼.

 

 

 

 

조물주가 세상을 창조하던 마음처럼

글자는 본래 소통의 매개다. 인쇄술도 소통을 위한 기술이다. 즉 금속활자는 소통을 위한 고민의 산물이다.

 

“화가의 그림도 그렇습니다. 자기 마음 안의 것들을 꺼내 소통하는 매개체죠. 그러니 ‘소통’의 상징인 책을 그리는 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용일은 한 인터뷰에서 좋은 그림이란 자기 마음에 있는 걸 온전히 화폭에 내비친 것이라고 말했다. 즉 신용일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낸 결과물이 바로 그의 작품이다.

 

“저에게 이 작업을 한마디로 하자면 ‘축복’입니다. 작업하고 있을 때도 그렇지만 작업에 대해 생각하고, 영감을 찾는 과정 자체가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조물주가 세상을 창조한 마음으로 제 작업을 사유하려고 노력합니다. 인간의 영감이나 재능도 자연의 일부라면 이런 사유를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작가 추혜미는 “신용일의 작품은 회화지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빚는 회화”라고 표현했다. 

신용일의 그림은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

 

 

예술하는 이들의 가슴속 웅덩이

신용일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집안이나 동네 담벼락에 그림을 그렸다. ‘내 길은 그림이다’라는 건 그때부터 이미 정해졌었다.

 

청주에서는 정평이 난 그림 신동이었고, 서울예대 재학 중에는 당시 드물게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한 학생이다. 대내외적으로 두드러진 많은 활동을 통해 세계적인 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가 자기의 개성만을 화폭에 담은 덕택일지도 모른다.

 

어려움도 있다. 자신의 순수한 감정을 드러내는 작품, 작가 자신의 세계를 찾는 그림만 그리니 자연히 곤궁함이 따랐다. 작가 신용일로서는 몰라도 가장으로서는 늘 미안함이 있다.

 

“제 그림이 좋거나 예술세계가 깊어서 작가 대접을 해준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어려운 길을 열심히 묵묵히 하고 있다는 점을 존중해주시는 거죠. 작가가 아니었다면 퇴직할 나이인데 저는 늘 수확을 앞둔 농부의 심정 같은 설렘으로 그림을 그려왔어요. 작가로서 살아가는 행복이기도 하지만, 불행일 수도 있어요. 궁색함을 피할 길은 없으니까. 회의를 느낄 땐 그럴 때죠.”

 

신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무속인들이 떠올랐다. 신용일이 그림을 그리는 건 선택이지만 선택이 아니다. 자기 예술을 하는 이들은 가슴 속에 마그마 한 웅덩이씩은 품고 있다. 무겁게 끓고 있는 그 용암을 내보내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그도 그렇다.

 

신용일은 자유인, 그것도 진정한 자유인을 꿈꾼다. 형식이나 논리를 혐오하지는 않지만 가까이하는 것을 경계한다. 한 번뿐인 인생에서 자기를 자기로서 지킬 수 있는 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지켜봐 주세요”

작가에게 작품이 인정받는 건 중요하다.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용일의 말처럼 예술가가 자기 속에 끓어 넘친 무언가를 표출해낸 작품으로 인정받는다는 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지음(知音)’을 얻는 것과 같은 쾌감이기 때문이다.

 

“1997년 즈음에 동경에서 그룹전을 했습니다. ‘시제마사 하야시’라는 일본인 사업가가 제 작업을 보고 후원하겠다고 했어요. 가장 잊지 못할 뿌듯함을 느꼈죠. 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야시 씨는 신용일의 작업을 보고 충격적이라고 했다. 진흙을 짜 직지를 빚어 심는 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예술인데 이를 다시 싹 지우는 과정에서 인생을 깨닫는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며 신용일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후원은 십수 년이 넘게 이어졌다. 묵묵히 작업을 이어가는 그를 주변에서도 십시일반 후원하고 있다. 

 

예술인을 만날 때면 마지막은 늘 목마름이다. 르네상스를 일으켰던 ‘메디치 가문’ 같은 존재에 대한 목마름이다. 

우리의 문화와 예술이 세계를 줄 세우기 시작한 시점. 모든 것에 K를 붙이는 이 시점에서 신용일에게도, 우리 예술계에도 ‘K-디치 가문’이 나타나 한국이 주도하는 르네상스를 보고 싶다.

 

 

신용일

서울예술대학 졸업

에꼴드 보자르 행스(프랑스)

한국미술협회

후지 갤러리 전속작가

씨올회, POST Minimal

 

 

개인전 기획 및 초대전

2021 인사아트센터(서울)

2020 갤러리 GL(골드창작스튜디오)

2019 바이올렛 갤러리(서울)

2018 Han 컬렉션 갤러리(런던)

        예일 갤러리(청주)

2017 Do 갤러리(서울)

        London 아트페어(런던)

        Yuei 갤러리(오사카)

2016 호류지 갤러리(나라)

        후지 갤러리(오사카)

        레지나 갤러리(서머셋&머큐어 호텔)

        미 갤러리(불교역사문화홍보관)

2015 deux 갤러리(도쿄)

         principle hotel special gallery (베니스)

2014 크로스베이 갤러리(시드니)

2016 직지코리아페스티벌(청주)

홍콩 바젤 아트페어(홍콩)

대구아트페어(대구)

POST Minimal 정기전(헤이리, 일산)

고베 아트마르쉬(일본 고페 포트피아호텔)

씨올회 정기전(서울아트센터)

도쿄 Salonblace전(동경도 미술관)

한일전(동경)

Asia 동경미술제(동경도 미술관)

Art-sacre 전(파리)

Joan Dire 국제 Drawing 전(스페인)

New York World space 전(뉴욕)

충북아트페어 전(청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