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3 (목)

  • 흐림동두천 22.8℃
  • 흐림강릉 28.0℃
  • 서울 24.4℃
  • 흐림대전 25.8℃
  • 흐림대구 29.8℃
  • 구름많음울산 27.4℃
  • 흐림광주 26.5℃
  • 박무부산 23.3℃
  • 흐림고창 26.5℃
  • 구름많음제주 31.9℃
  • 흐림강화 22.3℃
  • 흐림보은 24.8℃
  • 흐림금산 26.4℃
  • 흐림강진군 26.5℃
  • 구름많음경주시 30.2℃
  • 구름많음거제 23.5℃
기상청 제공
메뉴

‘테스형’에 열광하는 이유. 테스 형은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 질문할 뿐이다.

가끔은 궁금했다. 시니어가 왜 이토록 나훈아에 열광하는지. 그 이유를 찾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테스형’을 듣는 순간 ‘개안’이라도 된 듯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나훈아에 푹 빠져버린 것이다.

 

테스 형.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이름이다. 이제 나는 삶이 힘들 때면 ‘테스형’을 듣는다. 삶의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다.

 

테스형에게 물어봤는데 모른다더라.
이왕 세월이 흐르는 거, 우리가 끌려가면 안 된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야 한다

 

 

나훈아의 ‘테스형’이 세상에 울려 퍼진 지는 꽤 됐다. 당시 본방으로 ‘테스형’을 듣진 못했다. 물론 본 방송을 보지 못했다고 해서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필요하다면 언제든 찾아볼 수 있는 인터넷 세상이 있으니까. 나훈아의 ‘테스형’ 영상을 찾아봤다. 처음에는 왜 사람들이 테스형, 테스형 하는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의문은 금방 풀렸다.

 


테스 형, 그는 누구인가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 70세에 아테네의 감옥에서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그는 30년 동안 아테네 시민의 양심과 교육, 청년들의 인격을 각성시키기 위하여 시민들을 가르쳤다. 그 유명한문답법도 소크라테스의 교육방식 중 하나였다.


소크라테스가 철학자로서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기원전 430년경이다. 대략 마흔 무렵의 일이다. 당시 친구 카이레폰은 델피의 신전에서 들은 신탁을 그에게 전해준다. 신탁의 내용은 이렇다.


‘소크라테스보다 현명한 자는 없다.’

 

소크라테스는 이 신탁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깨달음에 도달한다. 자신이 현명한 이유는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현명하다고 자신하면서 자기의 무지를 못 깨닫는 데 비해 자신은 자신의 무지를 알고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무지(無知)의 지(知)’이자, ‘너 자신을 알라’다.


이후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무지’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 자신의 숙명이라 여긴다. 소크라테스는 이를 위해 거리며 시장 등을 들쑤시고 다니며 아테네 시민들을 만났다. 무언가를 가르치고 설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그저 끝없이 묻고 답하고, 또 물었다.

 

 

하지만 아테네의 권력자들에게는 그런 소크라테스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소크라테스의 행동은 당시의 권력자들에게는 ‘위험한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옳은지’, ‘우리가 사는 이곳이 올바른 사회인지’ 묻고 다그치며, 그들이 ‘생각’하기를 종용했다.


이에 권력자들은 소크라테스에게 국가가 정한 신을 믿지 않고 청년을 부패시키고 타락시켰다는 죄명을 그에게 씌웠다. 시민 500명으로 구성된 법정은 소크라테스에게는 ‘사형’을 선고한다.

 


나훈아와 아버지
향수를 자극하는 애절한 노래로 수많은 히트곡을 부른 가수 나훈아(羅勳兒). 그는 1947년 2월11일 부산광역시 동구에서 아버지 최영석 씨와 어머니 홍성염 여사 슬하의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최홍기(崔弘基). 사실 그가 노래를 처음 시작할 무렵 자신의 본명인 최홍기가 다소 일반적이라 ‘최훈’이라는 예명을 지었다.

 

그러나 최 씨 성 자체가 영 예술 하는 사람의 성 같지 않게 느껴졌다. 좀 더 튀고 기억하기 쉬운 성을 찾은 게 ‘나’ 씨였다. 이 성에 ‘훈’자를 붙이니까 ‘아’자는 자연스럽게 붙게 됐다. 이름을 ‘훈’이라면 부를 때 대개 ‘훈아’라고 부르기 때문에.

 

나훈아라는 전설적인 이름은 그렇게 탄생했다.

 


테스형의 시작은 후회
나훈아는 아버지 산소 앞에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이 ‘테스형’을 썼다. 나훈아의 아버지는 배를 타는 마도로스였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무역선을 탔으며, 어린 시절 나훈아는 아버지 덕분에 아주 유복하게 자랐다.


중학교 때 선생님이 반에서 5등 안에 들면 서울로 가는 원서를 써 준다고 했다. 나훈아는 반에서 2등을 했다. 결국, 나훈아는 형을 따라 서울로 상경했고, 꿈에도 그리던 서라벌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예술을 가르치는 서라벌예고에서 나훈아는 클래식 성악가가 되고 싶었다. 부모님의 의지는 달랐다. 공부에 소질을 보이는 아들이 판검사나 의사가 됐으면 했다. 그런데 나훈아가 느닷없이 노래하겠다고 하니 아버지가 펄쩍 뛰며 반대했을 것은 불보듯 뻔하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훈아는 아버지 몰래 레코드사와 계약하고 음반을 낸다. 당시 낸 음반에는 ‘천리길’, ‘사랑은 눈물의 씨앗’ 등이 포함돼 있었다. 나훈아의 타고난 목소리와 음색으로 탄생한 노래는 금세 히트를 쳤다.

 

당연히 아버지 귀에도 나훈아의 노래가 흘러들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노래를 흥얼거리고 따라부르면서도 그 노래가 자기 아들이 부른지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신 아들은 최홍기지 나훈아가 아니었으4니까.


대중적 인기와 경제적 성공에도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나훈아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훈아에게는 그것이 크나큰 인생의 후회이자 상처다. 지금도 그는 1년에 몇 차례씩 경기도 이천에 있는 아버지 산소 앞에서 통곡의 눈물을 흘린다. 그러다 그의 음악 세계에 길이 남을 또 다른 ‘명곡’이 탄생한 것이다.

 


아! 아버지, 세상이 왜 이래
나훈아는 아버지 산소에서 울부짖다 ‘테스형!’을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테스형’으로 지칭하며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 왜 이렇게 힘들어’라며 질문을 던지는 노랫말은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도 사로잡았다. 온라인에서는 새로운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콘텐츠)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나훈아는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친근하게 불러 ‘테스형’이라 가사를 붙였지만, 사실 이 곡은 ‘아버지’를 향한 ‘애부가’였다.


이제는 일흔이 훌쩍 넘은 나훈아는 여전히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많다. 그의 아버지는 향년 73세로 돌아가셨다. 이제는 자신도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당시의 나이만큼 나이를 먹었지만, 여전히 어린애처럼 모르는 게 즐비하다.

 

아버지라면 분명 답을 알려주실 거라고 믿지만, 그 어디에서도 답을 구할 순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산소 앞에서 혼자만의 넋두리를 하다 탄생한 ‘테스형’은 나훈아에게도 우리에게도 정답을 알려주진 않는다. 다만, 나훈아는 ‘테스형’을 만들고 부르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 나섰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 형 소크라테스 형,
사랑은 또 왜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 형


“우리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고 있다. 테스형에게 세상이 왜 이러냐, 세월은 왜 흐르냐고 물어봤다. 테스형에게 물어봤는데 모른다더라. 이왕 세월이 흐르는 거, 우리가 끌려가면 안 된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야 한다(나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