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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어’로 사랑 고백하던 중세 유럽 우리가 몰랐던 부채의 비밀

우리는 부채를 여름에 더위를 삼가는 도구 정도로만 사용해 왔다. 현대 사람들과 달리 과거 사람들은 부채를 다양한 의사소통 도구로 사용했다.

 

특히 17, 18세기 유럽에서 부채는 자신의 신분과 권위를 나타내는 귀부인의 ‘명품’이었을 뿐 아니라, 사랑을 속삭이는 매개체로도 활용됐다.

 

유럽에서 부채가 사랑의 매개체로 사용된 이유는 지금과 달리 여성들이 밖에서 타인(특히 남성)과 언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에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들만의 은밀한 언어를 부채를 통해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껏 몰랐던 부채의 비밀들을 알아본다.

 

 

부채는 오래전부터 동·서양 모두에서 썼다. 대부분 둥근 모양이었기 때문에 ‘단선(團扇)’이라 불렀다. 단선의 단(團)은 ‘둥글 단’으로 훈독하며 ‘원형’이라는 뜻이 있다.

 

중국의 고전 사극에서 여인들이 들고 나오는 부채가 대부분 원형의 단선이다. 단선이 변화하여 반원(180°), 4분의1원(90°), 3분의 1원(120°) 등 다양한 모양의 부채가 생겼다. 180° 이하의 둥근 모양을 부채꼴이라고 부르는 것도 여기서 시작됐다.


접선에 숨겨진 춘화의 유혹
고대 중국에서도 단선이 크게 발달했다. 단선은 동한 시대의 궁녀가 처음 만들었다 하여 궁선(宮扇)으로도, 명주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환선(紈扇)으로도 불렸다.

 

반면 접선(摺扇)은 송나라 때 고려로부터 전해졌다. 특히 접선은 명·청나라 때 취미로 서화를 즐겼던 문인들 사이에 문장이나 그림을 그려 서로 선사하는 것이 유행하면서 사랑을 받았다.

 

19세기 중국의 접선 중에는 ‘은밀한’ 그림이 숨겨져 있는 것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경극 장면을 담은 평범한 접선이다. 그러나 접힌 면을 살짝 뒤로 젖히면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 식이다. 문인들의 고매한 품성을 담은 시와 그림이 차지했던 공간이 때로는 남몰래 춘화(春畵)를 즐길 수 있는 소지품이었던 것.

 

“남자들이 검으로 자신을 무장하듯 여성은 부채로 자신을 무장한다.
그리고 때로는 여성의 부채가 남자의 검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화가 제임스 티소)

 

 유럽 여성들의 부채 커뮤니케이션 


발코니에 나간 부인이 왼손으로 부채를 부치
며 남자를 쳐다봄
: 다른 여자한테 작업 걸지 말 것


부챗살 사이로 여인의 손가락을 왔다 갔다 교차
시킬 때
: 저랑 이야기 좀 하시죠?

 

아주 천천히 부채를 부치며, 남자의 얼굴을 쳐
다볼 때
: 됐거든요. 저 기혼녀거든요. 다른 데 가서 알아
보세요.


한 손에서 또 다른 손으로 부채를 옮기는 것은
: 자꾸 집중 안 하지? 너 다른 여자 자꾸 쳐다 볼래?

 

부채로 손바닥을 강하게 내리치면
: 저를 사랑해주세요

 

부채를 살포시 자신의 입술에 갖다 댈 때
: 난 당신을 믿지 않아요

 

여인이 애교스럽게 부채를 이마에 대고 시선을 돌림
: 저를 잊지 마세요

 

여인이 부채를 펼쳐 왼쪽 귀 덮음
: 우리의 비밀을 이야기하지 마세요

 

펼쳐져 있던 부채를 천천히 접으면
: 당신과의 결혼을 약속해요

 

부채를 오른쪽 뺨에 가져다 그으면
: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부채 손잡이를 입술에 갖다 대면
: 키스해주세요


부채로 눈을 긋고 지나갔을 때
: 미안해요


유럽을 강타한 중국의 접선
중국의 접선은 동·서간 무역로가 열리면서 유럽으로 넘어간다. 당연히 유럽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중국 문물은 16세기경부터 유럽으로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다.


17, 18세기 유럽의 왕후나 귀족들은 당시 중국의 문화를 동경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에서 건너온 미술품과 사치품을 사들이는 것이 부를 과시하는 방법이었다.

 

16세기 전반, 깃털 부채가 주류를 이뤘던 유럽에서 중국의 접선이 자신의 부와 스타일을 자랑할 수 있는 물건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18세기 유럽의 ‘핫템’, 중국산 부채
18, 19세기 유럽 최고의 최고 인기 패션 아이템은 중국에서 만든 ‘브리제 부채’와 ‘채색풍속화 접선’이었다.


특히 상아, 나전, 거북이 등껍질 등으로 만든 브리제 부채에는 도교, 불교와 관련된 중국적인 주제와 유럽인의 취향에 따른 장식 문양, 가문의 문장 등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당연히 귀족들이나 부유층만 사용할 수 있는 매우 고가품이었다.


한편 채색풍속화 접선은 브리제 부채와 달리 중국 귀족의 생활이나 마카오 같은 항구 도시 풍경이 그려져 있다. 인물표현의 경우 남색과 붉은색으로 화려하게 채색된 배경에 인물의 얼굴을 도드라지게 표현해 입체적인 느낌을 준다.


실제로 19세기 유럽에서 인기가 있었던 이 부채는 ‘얼굴을 따로 붙여 표현했다’고 해 ‘Applied faces fan’이라고 불렀다. 중국의 관리들이 그려졌다는 의미로 ‘Manderin fan’이라고도 했다.

 

 

부채로 밀어를 나눈 유럽 여인들
살롱문화가 극에 달했던 18세기 유럽에서 부채는 ‘사랑의 매개물’이었다.


상류 사회 여성들은 부채를 통해 사랑하는 이에게 은밀하게 자기의 감정을 전했다. 가령 왼손으로 부채를 들어 얼굴을 가리는 동작은 ‘당신과 친해지고 싶어요’, 오른손으로 부채를 만지작거리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요’라는 의미다.


이러한 ‘부채 언어’는 17세기 스페인에서 시작해 유럽 각국으로 퍼져 나갔다. 심지어 런던과 파리에서는 특별 아카데미를 설립해 영어와 프랑스어로 부채 언어를 가르쳤다고 전해질 만큼 인기가 높았다.


20세기 들어 인쇄술이 발달하면서부터는 종이와 나무로 된 값싼 부채들도 등장했다. 버스의 운행 안내를 실은 광고용이나 학교, 클럽, 단체들의 로고를 붙인 기념 부채들이 대량 생산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깜찍한 디자인과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담긴 부채들이 팬시 상품으로 쏟아져 나온다. 커다란 깃털이나 야자수 잎 같은 자연 상태의 부채에서 단선(團扇), 접선 등에 이르기까지 부채는 다양한 형태로 인류와 함께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