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 至 淸 則 無 魚 人 至 察 則 無 徒 수 지 청 즉 무 어 인 지 찰 즉 무 도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않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 따르는 무리가 없다. 『한서열전』 <동방삭전> 세상에 완벽한 존재는 없다. 자세히 살펴보면 누구나 다 나름의 결함이 있고, 사람이 수행한 모든 일에는 흠결이 있다. 결함만 본다면 쓸 수 있는 인재가 거의 없고 취할 수 있는 행동이 거의 없다. 좋은 리더는 사람과 일을 너무 세세히 살피지 않는다. 넓고 크게 봐서 결함보다도 쓰임새가 더 크다면 그 결함은 못 본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제나라 환공이 ‘영척’이라는 인물을 하룻밤 대담만으로 신하로 맞자 측근들이 “그 사람에 대해 더 소상히 알아보자”고 아뢰었다. 그러자 환공이 이렇게 답했다. “그것은 잘못이오. ‘알아보자’는 건 그의 작은 잘못을 살피자는 것이외다. 작은 잘못을 트집 잡아 크게 훌륭한 점을 잊는다면, 천하에 드문 인재를 잃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오.” 환공이 여색을 밝히는 범용한 군주였음에도 춘추 최초의 패자가 된 건 중요하지 않은 것을 눈감을 줄 아는 리더의 도량을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학생이라면 꼭 챙겨야 할 건 검정고무신과 보자기, 그리고 양은 도시락이다. 양은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건 1960년대부터다. 가볍고 잘 끓는 양은은 ‘빨리빨리’ 코리아의 역동성과 맞아떨어졌다. 글 박준영 기자 자료 부천교육박물관 허기와 참기름이 없었다면 안에 든 건 별것 없었다. 맨밥에 김치다. 그나마도 쌀밥이 아닐 때가 많다. 눈치 없이 달걀 프라이가 밥 위로 올라가 있으면 ‘녀석’들의 타깃이 되니 달걀은 언제나 밥 아래 ‘있거나’ 아니면 높은 확률로 ‘없거나’였다. 콩자반에 멸치 볶음 정도면 괜찮은 조합이었다. 비엔나소시지는 희귀했고, 분홍 소시지는 그래도 ‘있는 집’ 자식 티를 내줬다. 지금 보면 열악해도 없어도 너무 없던 시절, 그 와중에 성장기를 맞아 끝 모르고 삐져 나오는 허기와 참기름 몇 방울, 난로의 뜨거움이 이 모든 걸 먹을 만하게 만들었다. 지긋지긋한 양은 도시락 한겨울, 새벽부터 몇 리 길에 시달려 냉골이 된 도시락은 오전 내내 조개탄 난로 위가 제자리다. 켜켜이 쌓인 노랗고, 누렇고, 누리끼리한 도시락은 되돌아보면 장관이었다. 목장갑을 낀 주번이 못 미더울 땐 제자들의 따수운 식사를 위해 선생님이 나서야 한다. “뒤집어라.” 힘센 놈 도시
인간은 불완전하다. 위인이라도 결점이 있다. 스스로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니 내가 완벽해질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타인은 더 그렇다. 그 역시 나와 같은 불완전한 존재다. 남에게 완벽을 요구하는 일이 공평하지 않은 이유다. 인간의 타고난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타인의 완벽을 종용하지 않으면 다툼이 생길 일이 없다. “자기 몸을 바르게 하고, 남에게 바름을 요구하지 않으면, 원망하는 사람이 없다.” 중용의 한 구절이다. 자기를 바르게 닦되 남에게는 이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것이 중행의 지혜다.
‘찬바람이 싸늘하게 두 뺨을 스치면, 따스하던 삼립호빵 몹시도 그리웁구나’ 삼립호빵 CM송 글 박준영 기자 자료 SPC삼립 호빵은 설렘이었다 동네 구멍가게 앞, 어느새 나타난 호빵 찜기가 모락모락 입김을 뿜는 게 눈에 들어오면 겨울 문턱에 들어섰다는 의미였다. 추운 겨울날 구멍가게 앞에 있는 호빵 찜기 주위를 서성거리다 가겟집 아줌마한테 한 소리 듣던 기억, 종이봉투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빵을 한 아름 안고 혹시나 식을까 잰걸음을 걷던 기억, 하얗게 부푼 호빵은 설렘이었다. 전기밥통에서 꺼낸 호빵에 묻은 밥풀을 떼먹고 나서 겉에 얇은 피막을 벗겨 먹다가 한입 덜컥베어 물면 달콤한 팥소에 혓바닥을, 입천장을 데기도 일쑤였다. 싸늘한 찬바람 속에서 느끼던 호빵의 온기는 겨울 그 자체처럼 느껴진다. 호빵 찜통이 이끈 대호빵 시대 추억의 겨울 간식, 호빵의 역사는 사실 다른 간식에 비해 역사가 오래된 편은 아니다. 1971년 삼립식품에서 나온 호빵이 국내 최초다. 이듬해 1972년 연탄을 사용하는 원통형 찜통이 소매점에 배포되면서 이른바 ‘호빵 시대’가 열렸다. 원통형 찜통에서 새어나는 하얀 김은 호빵 대중화의 핵심이었다. 1971년 10월 세상에 등장한 호빵은…
甚 美 必 有 甚 惡 심 미 필 유 심 악 (춘추좌씨전) 나쁜 점 없는 좋은 일, 좋은 점 없는 나쁜 일이란 없다. 사람의 일에 완벽하게 한 면으로만 이루어진 건 없다. 그래서 어떤 존재나 상황의 어느 한 면만 보고서는 이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좋은 것의 나쁜 점을 보고, 나쁜 것에서 좋은 점을 찾아야 진정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현자는 웃음에서 눈물을 보고, 발전에서 퇴보를 보며, 삶에서 죽음을 본다. 미에서 추를, 선에서 악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현자를 ‘어른’으로 바꿔도 마찬가지다. 노자는 말한다. “온 천하가 다 ‘미’를 미라고만 아는 것은 나쁜 것이고, ‘선’을 선이라고만 아는 것도 좋지 않은 것이다.” ‘춘추좌씨전’은 공자가 편찬한 것으로 전해지는 노나라 역사서인 ‘춘추’의 대표적인 주석서 중 하나다. 기원전 700년경부터 약 250년간의 역사가 담겨 있다.
言美則響美 言惡則響惡 언미즉향미 언악즉향악 말이 아름다우면 그 메아리도 아름다우며 말이 악하면 그 메아리도 악하다. -열자, <설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지만 눈 하나를 당하면 두 개를 노리는 게 사람의 감정이며, 이 때문에 수많은 복수극의 끝은 비참하고 허망하다.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라는 말이 있다. 남에게 방망이질하면 그는 방망이가 아니라 홍두깨로 앙갚음한다는 말이다. 감정은 주고받으면 증폭되는 특성이 있다. 고운 말 한마디는 두 마디 고운 말로 돌아오고, 한 방의 주먹은 두 방의 주먹으로 되돌아온다. 물리 법칙에서 작용·반작용의 법칙은 한쪽에서 가한 힘만큼 반대의 힘이 작용하지만, 사람의 감정에 적용되는 작용·반작용에는 이자가 붙는다. 감정의 이자는 악덕 고리대금업자보다도 이율이 높다.
얼마 전 스쿼트 머신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스쿼트 머신은 좀 더 부담 없이 스쿼트 운동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만, 스쿼트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이 운동하다간 허벅지 근육이 탄탄해지기 전에 무릎이 먼저 고장 날 수 있다는 점을 꼭 알아야 한다. 근육 운동의 기본인 '스쿼트'의 올바른 방법을 소개한다. 글 박준영 기자 사진 조도현 기자 도움 이유진 강사(큐브 필라테스 더 부천점) 스쿼트는 천천히 내려갔다 한 번에 쭉! 최대한 자세를 바르게 유지하면서 한 번에 수행할 수 있는 횟수를 1세트로 정하고, 3세트를 진행한다. 내려갈 때는 자극을 느끼며 천천히, 올라올 때는 엉덩이 근육을 밀어 한 번에 쭉 올리면 효과가 더 좋다. 준비 다리는 어깨너비, 양발은 살짝 바깥쪽으로 돌리는 게 원칙. 그러나 근력이 부족하다면 어깨너비보다 넓게 서고, 양발도 편한 만큼 벌려도 된다. 운동 되는 부위가 조금 달라지긴 해도, 기본적인 운동 효과는 같다. 앉기 앉을 때 가장 중요한 건 ‘무릎의 방향이 발끝과 일치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리를 구부린다’보다 ‘골반이 접히며, 고관절 사이로 엉덩이를 넣는다’는 이미지로 운동한다. 무릎 쪽 근육이 뜨끈하
삼 양 라 면 ‘새참으로 국수 대신 라면 청하는 일꾼들 덕에 맛본 별미’ 글 박준영 기자 사진 삼양식품 한국 라면의 원조, 삼양라면 우리나라 라면의 원조는 1963년에 출시한 삼양라면이다. 당시 라면 가격은 100g짜리 한 봉지에 10원. ‘꿀꿀이죽’이 5원, 담배 25원, 커피 35원, 영화 55원이었던 시절이다. 삼양식품의 故 전중윤 회장은 국내 식량난 극복에 일조하고자 가격을 낮게 책정했지만, 농촌에서는 라면도 귀한 식품이었다. 독자 박완석 씨(전남 화순, 1951년생)는 “그 시절 시골에 돈이 어딨소. 집에 나락이나 있지. 새참에는 으레 국수를 끓여 날랐는데 국수 말고 라면을 달라는 일꾼들이 점점 많아진 덕에 그제야 라면 구경을 했지요. 지금과는 다른 순한 맛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어요”라고 회상했다. 라면은 한국인의 소울푸드 이제 라면은 명실상부 한국인의 소울푸드다. 라면에 대한 다양한 정서를 다룬 노래도 많고, 장르를 불문하고 라면이 등장하는 장면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유튜버들은 “가장 많은 조회 수가 찍히는 건 결국 라면 먹방”이라고 입을 모은다. 해외여행에서 미슐랭 가이드니 맛집이니 섭렵하고 돌아와도 평소 즐겨 먹던 라면 한 젓
怒者常情 笑者不可測 노자상정 소자불가측 화를 내는 자는 뻔히 알 수 있으나 웃는 자는 헤아리기가 어렵다. 십팔사략, <당대종> 서부극이나 무협 영화에 나오는 실력자들은 늘 미묘한 미소를 머금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촌철살인을 한다. 반면 화를 내며 고함을 지르고, 말이 많은 자는 언제나 극 중에서 패하거나 죽임을 당하는 역할이다. 화를 낸다는 건 스스로 통제되지 않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화를 내는 건 자신의 약함과 악함을 드러내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격해진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온전히 자기 자신의 주인이다. 고요히 이성을 작동시킬 수 있는 만큼 약점이 줄어들고, 악함이 스며들 여지가 없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순자는 “본능적인 성정을 참아낼 수 있게 된 연후에야 자신을 닦을 수 있다”고 말한다. 가장 어려운 싸움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진정한 강자다. 강자야말로 어떤 상황이든 웃음을 보일 수 있다. 웃음은 여유의 증거이고, 여유는 강자의 것이다. 火를 다스려 和를 도모하는 자가 결국 승리한다.
路 遙 知 馬 力 日 久 見 人 心 노 요 지 마 력 일 구 견 인 심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세월이 오래되어야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명심보감, 교우 잠깐 달려봐서는 명마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렵다. 평범한 말이라도 짧은 거리는 잘 달린다. 천 리를 가봐야만 그 말의 진가를 알 수 있는 법이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짧은 시간 동안은 숨길 수 있다. 그러나 함께 한 시간이 길면 길수록 시간은 그 사람의 본 모습을 드러낸다. 타인에 대해 단시간만에 내린 판단은 상대의 위장으로, 혹은 나의 오인 때문에 잘못 봤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판단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겪어본 후에 할 일이다. 특히 이해관계의 충돌을 겪고, 위기와 난관을 함께 만난 뒤라야 더욱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사정이 좋을 때는 원수와 어깨동무를 해도 편안한 법이다.